몽골의 신의(神醫), 그 뒤에 숨겨진 의열단 폭탄 제조가 이태준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가 한반도를 강타하던 엄혹한 시기, 조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은 한반도를 넘어 만주, 연해주, 그리고 광활한 몽골 대륙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대중에게 몽골은 독립운동의 변방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당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당시 쿠론)는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 그리고 소련을 잇는 밀정이자 비밀 거점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국제적 비밀 공작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대암 이태준(李泰俊, 1883~1921) 선생입니다. 그는 몽골인들에게 전염병을 퇴치한 ‘신의(神醫)’로 존경받았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의 심장부를 타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신형 폭탄을 제조하고 자금을 수송하던 의열단의 핵심 공작원이었습니다. 인도주의적 의술과 가열찬 무장 투쟁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태준 선생의 삶을 심층적으로 조명합니다.
의술로 몽골 왕실을 사로잡은 청년 의사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태준 선생은 세브란스 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현대 의학을 전공했습니다. 1911년 졸업 후 안창호 선생이 이끌던 도산 안창호의 청년학우회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105인 사건 등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되자, 선생은 중국 망명을 거쳐 1914년 몽골 울란바토르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당시 몽골은 위생 상태가 극도로 열악하여 매독과 두창 등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고,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질병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태준 선생은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개업하고, 현지 주민들에게 무상에 가까운 진료를 펼치며 전염병 퇴치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의 정성 어린 의술은 몽골 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고, 마침내 몽골 복드 칸(Bogd Khan) 국왕의 어의로 위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19년, 선생은 몽골 국가 최고 훈장인 ‘에르데니-오치르(Erdene Ochir)’를 수여받으며 몽골인들에게 ‘신처럼 존경받는 의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의열단의 핵심 거점과 신형 폭탄 제조 공작
몽골 왕실과 상류층을 치료하며 확보한 이태준 선생의 명성과 경제적 부는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직결되었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병원인 동의의국을 단순한 의료 기관이 아닌, 국외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처이자 자금 수송의 거점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1920년 레닌이 지원한 한형권의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8만 루블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과정에서 거점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습니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의 만남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義烈團)은 일제 수탈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조직된 극렬 무장 투쟁 단체였습니다. 강력한 거사를 위해서는 일제의 감시망을 뚫을 수 있는 파괴력 높은 폭탄과 이를 제작할 기술자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김원봉은 몽골에서 거대한 자금력과 신망을 확보하고 있던 이태준 선생에게 비밀 임무를 요청했고, 선생은 주저 없이 의열단에 합류했습니다.
헝가리 출신 폭탄 전문가 포섭과 비밀 수송
이태준 선생은 의학적, 화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여파로 몽골에 체류 중이던 헝가리 출신의 마자르족 폭탄 제조 전문가들을 비밀리에 포섭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일제의 정밀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강력한 신형 폭탄을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된 폭탄과 자재들은 의약품 박스로 위장되어 일제 고등경찰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베이징을 거쳐 조선 본토로 반입되었습니다.
이렇게 수송된 폭탄과 자금은 1920년대 초반 경성 한복판을 흔든 종로경찰서 투탄 거사를 비롯하여 일제 식민 통치 기관을 타격하는 주요 공작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일제 경찰은 몽골에서 이동하는 의약품 박스의 수상한 동태를 파악하고 이태준 선생의 뒤를 바짝 쫓았으나, 선생의 치밀한 비밀 공작망을 쉽게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백위군 점령과 안타까운 순국
의열단의 대규모 국외 거사를 준비하던 이태준 선생에게 1920년대 초 몽골의 불안정한 정세는 거대한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1920년 말, 볼셰비키 혁명군에 밀려 몽골로 침입한 러시아 백위파 잔당의 수장 운게른 슈테른베르크(Roman von Ungern-Sternberg) 남작이 울란바토르를 점령했습니다.
광기에 사로잡힌 운게른 부대는 울란바토르 전역에서 적색군 동조자와 외국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이태준 선생은 의사로서의 인도주의적 사명감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했으나, 운게른 부대 내에 상주하던 일제 밀정과 군벌 세력의 통모로 인해 1921년 2월 비밀리에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선생은 일제의 압력과 광기 어린 군벌의 협박 속에서도 단단한 지조를 지켰으나, 결국 1921년 2월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국땅 몽골에서 장렬히 순국했습니다. 선생의 시신은 울란바토르 남쪽 남산 기슭에 묻혔으나, 유해는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사에 남긴 위대한 유산과 현대적 의의
대암 이태준 선생의 삶은 단순한 의사나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넘어, 국경을 초월한 인도주의와 치열한 애국심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독보적인 사례입니다. 몽골 정부는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울란바토르 자이승 승전탑 인근에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조성하였으며, 오늘날 한국과 몽골 우호 협력의 역사적 상징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또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몽골 대륙의 ‘신의’이자 의열단의 비밀 영웅이었던 이태준 선생의 헌신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독립 정신의 불꽃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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